신영복 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곁에 두고 하지 않은 숙제 중 하나였다."처음처럼(신영복 저)"은 재미나게 읽었으면서도 왠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손이 쉽게 가지 않았다. 2019년 8월에 드디어 이 숙제를 한 번 했다. 굳이 한 번 실행했다고 표현한이유는 앞으로 마음에 드는 쪽을 펼쳐 읽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한 번 했으니 두번이 어려울리 없잖아. 그런 의미에서 이번 예스24와 돌베개의 이벤트를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고인이 되신 신영복 저자의 책을 읽기 전에 김준엽 총장, 훌륭한 업적과 일화를 남긴 태국 국왕, 교황 그리고 넬슨 만델라를 떠올려보았습니다. 큰 어른이라는 측면에서 동일 선상에 놓고 따져보았는데, 큰 어른이 필요한 시기에 자신이 크다 않고 "작지만 할 말은 하고 살겠다"는 정신을 실천한 분의옥중서간이라믄 점을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옥중서간이기에 숨겨지거나 가려진 부분이 적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1969년부터 1988년이란 시기가정치나 신념 면에서 그리 자유롭지 않았다고 기억하는데 그 시기에감옥에서 전해온 이야기 몇 몇을 필사해보겠습니다.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고, 기억에남은 이야기 몇 개만 적어보겠습니다.고성 밑에서 띄우는 글 남한산성 육군교도소 1969년 1월독방의 영토 안양교도소 1970년 9월한 포기 키 작은 풀로 서서 대전교도소 1971년 2월나는 걷고 싶다 전주교도소 1986년2월 ~ 1988년 8월.1.농촌 아이들은 참 많이 죽는다. 시골의 어머니들은 보통 여남은 명의 아이를 낳지만 그중 네댓 명 정도만 남고 다 죽는다. 약한 놈은 일치감치 죽어버리고 강한 놈만 살아서 커가는 것이다. 농촌에서는 강한 아이만이 어른이 될 수 있다. 살아남은 그 어른들을 보고城內성내 사람들은 농촌 사람들이 無病무병하고 건강하다고 말한다. 맑은 공기에 산수, 일광이 좋아서 농촌 사람들은 무척 튼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시골 어머니들이 흘린 그 숱한 눈물을 모르는 것이다. 농촌의 노인들이 도회지에 가면 전부 환자가 된다. 그것은 교통사고로 아스팔트 위에서 부상을 당하기 때문이 아니라 시골에서는 질병이 인내되는 데에 반하여 도회지에서는 치료되고 있기 때문이다. 26쪽 초목 같은 사람들 "살아남은 그 어른들을 보고 성내 사람들은 농촌 사람들이 무병하고 건강하다고 말한다. …… 그 숱한 눈물을 모르는 것이다." 아마도 저자가 하고 싶었던 여러 말 중에 한마디가 "모르잖아요."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모르는 것이 맞습니다. 각종 검열과감시를 뚫고남은 이야기라 할지라도 마음 속 모든 것을털어놓을 수 없는 상황 등을 고려해야 하겠습니다. 2. 그가 보관하고 있는 엽서를 전부 싣지는 못하였지만 그와 상의하여 230장가량을 뽑아서 실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실리지않은 편지와 글들을 싣게 된 것은 비단 우리들뿐만 아니라 많은 독자들에게도 매우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된다. 특히 지금은 없어졌지만 남한산성의 육군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에 하루 두 장씩 지급되는 휴지에다깨알같이 박아 쓴 그의 사색노트를 함께 실었다. 이 노트는 저자가 출소한뒤에야 집에서 발견된 것으로 당시 남한산성에서 근무한 어느 헌병의 친절이아니었더라면 영영 없어져버렸을 그의 20대의 사색의 편린이다. 그리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은 독자들이 궁금해하던 76년 이전의 편지도 마침이삿짐을 챙기다가 발견되어 함께 싣게 되어 그의 20대와 30대 초반의 사색을 접할 수 있게 된 것은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10쪽 1993년 정월보름. 여러 친구들을 대신하여, 이영윤. 영인본 엽서 서문. 1969년부터 1988년. 이 기간 동안 감옥 밖에서 무수한 일이 있었습니다.그리고 저자는 이 긴 기간 동안 감옥에있었습니다.그럼에도 이런 부탁을 받았다고 적혀있습니다. "오래전의 이야기입니다만 출소를 하루 앞두고 제게 일자리 하나 주선해주기를 부탁하던 젊은 친구에 관한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그가 생각하는 그런 동창 선후배가 이미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제게는바로 그와 같은 밑바닥 인생들밖에 친구가 없었습니다." 325쪽 (우산 없는 빗속의 만남, 1985년 5월). 그럼에도 끊임없이 이런생각 저런 생각을 쓰고 또써내려간 이유에 대해 그 힘에 대해생각하고 그 힘을 한국 사회에 좋은 방향으로 전달할 방법을 생각해내고 싶습니다.3. 며칠 전에 1885년 아메리카의 한 인디언이 미국 정부에 보낸 편지를읽었습니다. 그 속에는 이런 구절들이 있습니다. "당신(백인)들은 어떻게 하늘을, 땅의 체온을 매매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땅을 팔지 않겠다면 당신들은 총을 가지고 올 것입니다. ……그러나 신선한 공기와 반짝이는 물은 기실 우리의 소유가 아닙니다." "갓난아기가 엄마의 심장의 고동소리를 사랑하듯 우리는 땅을 사람합니다." …… 그 편지는 다음과 같은 구절로 끝맺고 있습니다. "당신의 모든 힘과 능력과 정성을 기울여, 당신의 자녀들을 위하여 땅을보존하고 또 신이 우리를 사람하듯 그 땅을 사랑해주십시오. …… 백인들일지라도 공동의 운명으로부터 제외될 수는 없습니다." 133쪽 1979년 2월 인디언의 편지. 지금 한국 내에서 누가 백인이고 누가 인디언인줄은 모르겠습니다. 허나"백인들일지라도 공동의 운명으로부터 제외될 수는 없습니다", 이 글은 1885년이나 2019년이나 다름 없이 유효하다고 생각됩니다. 상생이 필요하고 지혜로운 큰 어른이 나서서 편가름이 아니라 힘을 모으게 도움을 줘야하는현상황에서 공동의 운명과 상생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았습니다. 힘이 부족하더라도 힘을 내서 한국이 살만한 곳으로 만드는 꿈을 이루고 싶어졌습니다. 4. 1966년 이른 봄철 서울대학교 문학회의 초대를 받고 회원 20여 명과 함께서오릉으로 한나절의 답청놀이에 섞이게 되었다. 우리 일행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 여섯 명의 꼬마 한 덩어리를 뒤늦게서야 깨닫게 되었다.나와 이 가칭 독수리 용사들과의 첫번 대화는 대체로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있었다. 우리는 어느덧서오릉에 닿았고 이제 이 꼬마들과 헤어져서 나는 학생들 틈으로 돌아왔다. 물론 이따가 한 번 더 만나기로 약속해두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나와 헤어질 때의 일……. 진달래 한 묶음을 수줍은 듯머뭇거리면서 건네주던 그 작은 손, 그리고 일제히 머리 숙여 인사를 하는그 작은 어깨와 머리 앞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선생님 이 아닐 수 없었으며, 선생으로서의 진실 을 외면할 수는 도저히 없었던 것이다. 서오릉 봄소풍날로부터 약 15일이 지난 어느날, 숙명여대 교수실에서 강의 시작 시간을 기다리고 앉아 있는 나에게 정외과의 조교가 세 통의 편지를가지고 왔다. 조대식, 이덕원, 손용대 세 녀석이 보낸 편지였다. 이 녀석들이 바로 독수리 부대 용사들이라는 것은 겉봉에 적힌 문화동 산 17번지 를 읽고 난 뒤에야 알 수 있었다. 엽서를 띄웠다. "이번 토요일 오후 다섯 시, 장충체육관 앞에서 만나자." 토요일 오후 다섯 시, 장충체육관 앞의 넓은 광장에서 우리 일곱 명은 옛친구처럼 반가이 만났다. 그러나 이미 한 시간 전부터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이 녀석들의 정성 앞에서 나는 또 한번 민망스럽고 초라할 수밖에 없었다.…그들의 진솔함이 동상처럼 높이 올려다보이는 것이었다. 1966년 9월 우리 청구회 회원 중 2명이 교체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열심히 모였다. 비가 오는 날이면 장충체육관의 처마 밑과 층층대밑에서 만났으며 겨울철에도 거르는 일 없이 만났다. 그리고 매월 마지막 토요일에는 그들의 독후감을 이야기하게 하고 거기에겉들여 비슷한 이야기를 내가 들려주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중학교에 진학할 경제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생기는 걱정이라는 점에서 실은 진학문제라기보다는 사회진출 문제라고 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1968년 7월까지 중학교에 진학한 회원은 조대식 1명밖에 없었으며 또 이덕원 군이 자전거포에 취직이 되었을 뿐이었다. 이날 청구회 회원들은 여학생들과 사관생도들로부터 대단한 우대를 받았다. 가난한 옷차림을 낮추어보는 시선도 없었고, 가난한 옷차림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의 구김새도 없이 신나게 놀았던 하루였다. 밟아도 솟아나는 보리싹처럼 우리는 주먹 쥐고 힘차게 자란다 배우며 일하는 젊은 용사들아 동트며 새아침 태양보다 빛나게 나가자 힘차게 청구용사들. 내가 겪은 최대의 곤혹은 이번의 전 수사과정과 판결에 일관되고 있는 이러한 억지와 견강부회였다. 이러한 사례를 나는 법리해석의 문제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권력 그 자체의 가공할 일면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지만 이는 특정한 개인의 불행과 곤혹에 그칠 수 있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는점에서 심각한 사회성이 伏在복재하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먼 훗날 나는 서오릉으로 봄철의 외로운 산책을 하고 싶다. 맑은 진달래 한 송이 가슴에 붙이고 천천히 걸어갔다가 천천히 걸어오고 싶다. 46쪽 청구회 추억 청구회 추억은 제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끝까지 읽게 해준 힘이 되었던 파트입니다. 1966년 당시 문화동은 그리 잘 살던 동네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 곳에서 소풍 온 여섯 아이들과의 만남, 청구회. 그 만남을 소중히이어온 모임이 뒤에 어떤 식으로 왜곡되었는지를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청구회 회원들은 20년 후에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합니다. 5. 천재란 그것이 어느 개인이나 순간의 독창이 아니라 오랜 중지의 집성이며 협동의 결정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219쪽 비슷한 얼굴 뿐만 아니라 양쪽을 절충하여 중간은 정당하다 는 논리 속에 한 동안 안주하다가 중간은 가공의 자리 이며 방관이며, 기회주의이며, 다른 형태의 방황임을 소스라쳐 깨닫고 허둥지둥 그 자리를 떠나던 기억도 없지 않습니다. 237쪽 한 포기 키 작은 풀로 서서 우리는 각자의 사건에 매몰되거나 각자의 감정에 칩거해 들어가는 대신우리들의 풍부한 이웃에 충실해갈 때 비로소 벽이 위험으로부터 안전해질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바다가 하늘을 비추어 그 푸름을 얻고, 세류를 마다하지 않아 그 넓음을 이룬 이치가 이와 다름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240쪽벽 속의 이성과 감정 야! 거기 화단자리 밟지 마라 이제 이사갈 텐데 어때. 아니야. 우리가 떠나고 난 뒤 이곳에 꽃이 피게 해야지. 281쪽 수만 잠 묻히고 묻힌 이 땅에 셋째로 이 두 사람은 여러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경우에는 언제나 제일 많은사람이 달라붙는 말단의 바닥일을 골라잡습니다. 일부의, 더러는 먹물이 좀들어 있는 사람들이, 반드시 힘이 덜 들어서가 아니라, 약간 독특한 작업상의 위치를 선호하여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일정하게 구별하려는 경향이 있음에 비하여 이 두 사람은 언제나 맨 낮은 자리, 그 무한한 대중성 속에 철저히자신을 세우고 있습니다. 바로 이 점에서 이 두 사람은 제게 다만 일솜씨만을 가르치는 기술자 의 의미를 넘어서 사람 을 가르치는 師表사표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두사람이 걸레를 잡으면 저도 걸레를 잡고, 이두 사람이 삽을 잡으면 저도 얼른 삽을 잡습니다. 303쪽 일의 명인 Because I really conceived that I could be a better person with him. "그 여인은 그이와 함께라면 보다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에" 그아 일생을 함께 하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우리 시대의 수많은 우상우상을 깨뜨리고 인간의 진실을 꿰뚫어보는 뛰어난 통찰이며 양심이라 느껴집니다. 350쪽 계수님의 하소연 심지어는 어느 개인의 독창이라고 일컬어지는 사상이나 업적도 대개는 그개인의 정신세계 내에서 굴절, 추상, 재편된 상황 그 자체인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사명당실기"의 서두에서 인용하신 "사람은 그 부모보다 그 시대를닮는다"는 아버님의 글이 이상의 모든 서술의 압축이라 하겠습니다. 276쪽 사람은 부모보다 시대를 닮는다 혹여 다른 파트만 읽고 이 책 속에 읽을 꺼리가 부족하지나 않을까 오해하시는 분이 계실까봐 읽을 꺼리 조금만 필사해보았습니다. 나이 들어 만난 이 책은, 고민꺼리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면 어때? 라는답을 주기도 하고, 난 참 속이 좁은 사람이네. 분발해야겠다. 라는 마음이생기게도 하였습니다. 다시 읽으면 또 다른 영감을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무엇보다 잘못없이 감옥에 갇혔음에도 그 감옥에서 자신을 단련한 모습만으로도, 그리고 꾸밈없이 난 작은 사람이다. 가족의 도움으로 살고 있다. 고 말한 것만으로도 신영복 저자 그 자신이 사표가 될 만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시간을 두고 다시 읽으면더욱 좋은 책, 그런 책을 만났습니다.
1988년 첫 출간된 이래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깊은 감동을 남기며 이 시대의 고전으로 기록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의 증보판. 저자의 출소 이후 발견된 메모노트와 기존 책에 누락된 편지글들을 완벽하게 재현해내었다. 10년 전, 저자가 옥중에 있었을 당시 출간되었던 기존의 책은 1976년 2월의 편지부터 실려 있었으나 이 책에는 ‘청구회 추억’ 등 1969년 남한산성육군교도소에서 기록한 글들과 1970년대 초반 안양·대전교도소에서 쓴 편지들이 누락 없이 완전한 모습으로 담겨 있어 저자의 20대 사색의 편린들과 어려웠던 징역 초년의 면모까지도 면밀히 살펴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은 영어의 몸으로 겪어낸 20년 20일간의 옥중 삶의 흐름이 저자의 고뇌 어린 사색의 결정과 함께 잔잔히 펼쳐진다. 일부 편지의 원문을 그대로 살려 실었을 뿐 아니라 수신자 중심이 아닌 시기별로 구성되어 있어 저자의 20년 20일 동안 옥중 삶의 흐름과 고뇌 어린 사색의 결정들을 더욱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초판 서문
영인본 〈엽서〉 서문
증보판 서문
고성(古城) 밑에서 띄우는 글
남한산성 육군교도소 (1969년 1월∼1970년 9월)
나의 숨결로 나를 데우며 / 사랑은 경작되는 것 / 고독한 풍화(風化) / 단상 메모 / 초목 같은 사람들 / 독방에 앉아서 / 청구회 추억 / 니토(泥土) 위에 쓰는 글 / 70년대의 벽두 / 고성(古城) 밑에서 띄우는 글
〈독방의 영토(안양교도소 1970년 9월∼1971년 2월)〉
객관적 달성보다 주관적 지향을
〈한 포기 키 작은 풀로 서서(대전교도소 1971년 2월∼1986년 2월)〉
형님의 결혼 / 공장 출역(出役) / 잎새보다 가지를 / 염려보다 이해를 / 고시(古詩)와 처칠 / 부모님의 일생 / 아버님의 건필을 기원하며 / 겨울 꼭대기에 핀 꽃 / 이방지대에도 봄이 / 아버님의 사명당 연구 / 한 권으로 묶어서 / 하정일엽(賀正一葉) / 눈은 녹아 못에 고이고 / 생각을 높이고자 / 아름다운 여자 / 엄지의 굳은 살 / 어머님의 염려를 염려하며 / 좋은 시어머님 / 이웃의 체온 / 봄철에 뛰어든 겨울 /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 간고한 경험 / 비행기와 속력 / 인도(人道)와 예도(藝道) / 신행(新行) 기념여행을 기뻐하며 / 사삼(史森)의 미아(迷兒) / 봄볕 한 장 등에 지고 / 봄은 창문 가득히 / 서도의 관계론(關係論) / 첩경을 찾는 낭비 / 꽃과 나비 / 버림과 키움 / 할머님이 되신 어머님께 / 바깥은 언제나 봄날 / 우공(愚公)이 산을 옮기듯 / 두 개의 종소리 / 매직펜과 붓 / 민중의 얼굴 / 짧은 1년, 긴 하루 / 거두망창월(擧頭望窓月) / 옥창(獄窓) 속의 역마(驛馬) / 창랑의 물가에서 / 10월 점묘(點描) / 이사간 집을 찾으며 / 세모에 드리는 엽서 / 새해에 드리는 엽서 / 자신을 가리키는 손가락 / 더위는 도시에만 있습니다 / 한가위 달 / 옥창의 풀씨 한 알 / 동굴의 우상 / 손님 / 인디언의 편지 / 엽서 한 장에는 못다 담을 봄 / 쌀을 얻기 위해서는 벼를 심어야 / 방안으로 날아든 민들레씨 / 슬픔도 사람을 키웁니다 / 피서(避書)의 계절 / 강물에 발 담그고 / 참새소리와 국수바람 / 추성만정 충즉즉 / 눈 오는 날 / 겨울은 역시 겨울 / 서도 / 우수, 경칩 넘기면 / 꿈마저 징역살이 / 더 이상 잃을 것 없이 / 속눈썹에 무지개 만들며 / 한 송이 팬지꽃 / 햇볕 속에 서고 싶은 여름 / 널찍한 응달에서 / 메리 골드 / 저녁에 등불을 켜는 것은 / 바다로 열린 시냇물처럼 / 창살 너머 하늘 / 흙내 / 창고의 공허 속에서 / 어머님 앞에서는 / 신발 한 켤레의 토지에 서서 / 영원한 탯줄의 끈 / 낮은 곳 / 떠남과 보냄 / 어머님의 붓글씨 / 새벽 참새 / 동방의 마음 / 산수화 같은 접견 / 세월의 아픈 채찍 / 침묵과 요설(饒舌) / 초승달을 키워서 / 불꽃 / 피고지고 1년 / 없음[無]이 곧 쓰임[用] / 봄싹 / 악수 / 나막신에 우산 한 자루 / 보따리에 고인 세월 / 창문에 벽오동 가지 / 한 그릇의 물에 보름달을 담듯이 / 보리밭 언덕 / 풀냄새, 흙냄새 / 고난의 바닥에 한 톨 인정의 씨앗 / 땅에 누운 새의 슬픔 / 할아버님의 추억 / 청의삭발승(靑衣削髮僧) / 글씨 속에 들어 있는 인생 / 창백한 손 / 밤을 빼앗긴 국화 / 생각의 껍질 / 교(巧)와 고(固) / 낙엽을 떨구어 거름으로 묻고 / 발 밑에 느껴지는 두꺼운 땅 / 창문과 문 / 헤어져 산다는 것 / 더 큰 아픔에 눈뜨고자 / 눈록색의 작은 풀싹 / 정향(靜香) 선생님 / 어둠이 일깨우는 소리 / 담 넘어 날아든 나비 한 마리 / 서도와 필재(筆才) / 따순 등불로 켜지는 어머님의 사랑 / 감옥 속의 닭 ‘쨔보’ / 바다에서 파도를 만나듯 / 환동(還童) / 욕설의 리얼리즘 / 황소 / 역사란 살아 있는 대화 / 저마다의 진실 / 샘이 깊은 물 / 그 흙에 새 솔이 나서 / 우김질 / 아버님의 연학(硏學) / 비슷한 얼굴 / 감옥은 교실 / 아버님의 저서 〈사명당실기〉를 읽고 / 뜨락에 달을 밟고 서서 / 가을의 사색 / 땅 속으로 들어가는 것 / 아내와 어머니 / 세월의 흔적이 주는 의미 / 겨울 새벽의 기상 나팔 / 갈근탕과 춘향가 / 한 포기 키 작은 풀로 서서 / 벽 속의 이성과 감정 / 꿈에 뵈는 어머님 / 함께 맞는 비 / 죄명(罪名)과 형기(刑期) / 과거에 투영된 현재 / 아프리카 민요 2제(二題) / 아버님의 한결같으신 연학 / 꽃순이 / 증오는 사랑의 방법 / 빗속에 서고 싶은 충동 / 무거운 흙 / 타락과 발전 / 독다산(讀茶山) 유감(有感) / 어머님의 민체(民體) / 녹두 씨알 / 보호색과 문신 / 어머님의 자리 / 바라볼 언덕도 없이 / 시험의 무게 / 과거의 추체험(追體驗) / 사람은 부모보다 시대를 닮는다 / 한 발 걸음 / 수만 잠 묻히고 묻힌 이 땅에 / 징역보따리 내려놓자 / 구 교도소와 신 교도소 / 닫힌 공간, 열린 정신 / 타락의 노르마 / 민중의 창조 / 온몸에 부어주던 따스한 볕뉘 / 엿새간의 귀휴 / 창녀촌의 노랑머리 / 물은 모이게 마련 / 잡초를 뽑으며 / 일의 명인(名人) / 장기 망태기 / 무릎 꿇고 ?는 세월 / 벼베기 / 관계의 최고형태 / 설날 / 나이테 / 지혜와 용기 / 세들어 사는 인생 / 노소(老少)의 차이 / 호숫가의 어머님 / 우산 없는 빗속의 만남 / 다시 빈곳을 채우며 / 아픔의 낭비 / 여름 징역살이 / 어머님과의 일주일 / 우리들의 갈 길 / 작은 실패 / 옥중 열여덟번째의 세모에 / 최후의 의미 / 인동(忍冬)의 지혜 / 하기는 봄이 올 때도 되었습니다
〈나는 걷고 싶다(전주교도소 1986년 2월∼1988년 8월)〉
새 칫솔 / 낯선 환경, 새로운 만남 / 나의 이삿짐 속에 / 새벽 새떼들의 합창 / 모악산 / 계수님의 하소연 / 물 머금은 수목처럼 / 사랑은 나누는 것 / 끝나지 않은 죽음 / 수의(囚衣)에 대하여 / 땜통 미싱사 / 부모님의 애물이 되어 / 토끼의 평화 / 토끼야 일어나라 / 설날에 / 잔설도 비에 녹아 사라지고 / 혹시 이번에는 / 밑바닥의 철학 / 어머님의 현등(懸燈) / 죄수의 이빨 / 머슴새의 꾸짖음 / 징역살이에 이골이 난 꾼답게 / 거꾸로 된 이야기 / 뿌리 뽑힌 방학 / 장인 영감 대접 / 환절기면 찾아오는 감기 / 추석 / 졸가리 없는 잡담 다발 / 떡신자 / 완산칠봉 / 스무번째 옥중 세모를 맞으며 / 나는 걷고 싶다 / 백운대를 생각하며 / 잘게 나눈 작은 싸움 / 비록 그릇은 깨뜨렸을지라도 / 옥담 밖의 뻐꾸기 / 새끼가 무엇인지, 어미가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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